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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어 출신이며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843년 예니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정치성이 다분한 저술 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 년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 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나 부정하는 입장에서나 모두 마르크스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임을 전제한다.
그의 경제학 저술은 오늘날의 노동 및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이해 대부분의 기초를 놓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학자, 노동조합, 예술가, 정당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각자 재독해, 변형, 변용했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근대 사회학의 뼈대를 세운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되었다.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정치 이론을 집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라 하며, 인간 사회가 계급투쟁을 통해 진보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소위 사적유물론이라는 비판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 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한 결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며 그 긴장에 의해 자멸하고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되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기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로 부려 먹힌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 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 적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하리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골자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거꾸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출판 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좀 더 철저히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영박물관 열람실에 틀어박혀 다양한 정치경제학 서적과 경제지표들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1857년까지 마르크스는 자본, 부동산, 임노동, 국가, 무역, 세계시장에 관한 800 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썼다.
다만 이 원고는 1939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으로 출간되기 전까지는 미공개로 남아 있었다.
마침내 1859년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출간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저서 중 경제학에만 집중한 첫 저서로서, 훗날 완성될 《자본론》의 예고편 정도의 의도로 쓰였다.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수용, 확장했다. 이 책은 상당히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초판이 빠르게 매진되었다.
《정치경제학 비판》의 상업적 성공에 고무된 마르크스는 1860년대 초부터 자신의 일생을 집대성한 평생의 역작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3권짜리 《자본론》, 《잉여가치론》이었다.
《잉여가치론》은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등 앞선 정치경제이론가들에 대해 논하는 내용인데, 때론 이것이 《자본론》 제4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역사상 최초로 경제사상사를 종합적으로 다룬 논고이기도 했다.
1867년, 《자본론 제1권》이 출간되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생산과정을 분석한 것이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토머스 호지 스킨의 영향을 받은 노동가치설을 정교하게 제시한다.
마르크스는 호지 스킨의 《자본의 범죄로부터 보호된 노동》을 극찬하며 그 영향을 받았음을 《자본론》 지상에서 여러 번 인정한다.
호지 스킨은 '개인의 노동에 자연스러운 보상'은 없어졌으며, '각 노동자는 전체의 어떤 부분만을 생산할 뿐이고, 각 부분은 혼자서는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으니,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논했는데, 마르크스는 호지 스킨의 이런 주장을 근대 자본주의 생산하에서 노동의 소외를 방증하는 수단으로서 인용했다 《자본론 제1권》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와 착취의 개념을 설명하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이윤율 급락으로 이어져 산업자본주의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노동사상은 그가 사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 관계(경제결정론)라고 우선순위를 부여한 것과 관계가 있다.
자본축적이 사회체제를 빚어낸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변혁이란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 간의 갈등에 의한 것이며, 그 충돌은 경제적 힘으로 추동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갈등이론의 근간이 되는 발상이다.
마르크스의 역사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며 자유롭고 생산적이며 창조적인 과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제적이고 탈인간적인 것으로 바뀌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는 그 경향의 첨단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의도적인 과정이 아니며, 개인이나 심지어 국가조차 이 경제의 힘에 거스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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